1896년 6월 10일 명례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영남지방에서는 네 번째 성당이고, 마산교구에서는 첫 번째 성당이다. 명례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가 부임했다. 강성삼 신부는 강도영, 정규하 신부와 함께 1896년 4월 26일 서울 약현 성당에서 서품을 받았는데,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 이어 세 번째로 서품 받은 신부들이다.

명례리 1122번지의 방이 세 개인 집을 구입해 1897년 첫 성당을 지었으나 1904년 8월 20일 폭풍으로 성당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1926년 5월 2대 주임으로 권영조 마르코 신부가 부임했다. 권영조 신부는 기존 성당 건물을 허물고 위치를 옮겨 1928년 8월 기와와 목재로 된 성당을 완공하여 대구교구 안세화 플로리안 드망즈 주교 집전으로 낙성식을 거행했다.

1936년 태풍으로 두 번째 성당도 완전히 파손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손된 잔해 속에서 성모상과 감실은 손상 없이 고스란히 발견 되었다. 1938년 김유인 회장은 사재를 털어 성전을 축소 복원 하였다. 새로 성당을 지어 성모상을 올릴 때 그 주변을 장미로 단장 하였다.

벽에 붙어 있는 제대와 남녀를 구분해서 앉았던 가로막과 손글씨로 쓴 십자가의 길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526호로 지정되었다.

  • 페낭에서 돌아온 신학생들 (1893년경), 왼쪽에서 네번째 강성삼 신부

  • 태풍으로 파손된 잔해 속에서 손상 없이 발견된 성모상

  • 성모승천성당과 팽나무

  • 성모승천성당 내부

신석복 마르코 순교자의 누룩과 소금의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성지를 조성하기 위해 순교자의 생가터에 2018년 5월 19일 신석복 마르코 기념성당을 봉헌했다.
언덕이 끝나는 곳에 계단식으로 성진의 지붕을 달아내고 그 아래가 성전이다. 녹는 소금을 상징하는 12개의 구조물은 성당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가는 창이다.
성전 지붕에 올라가면 그 아래 펼쳐진 벌판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성전 내부는 7개의 기둥과 회랑으로 이루어졌는데, 저녁 석양 무렵 회랑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은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녹는 소금의 의미를 가지고 땅속으로 내려온 기념 성진은 ‘빛과 소금’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신석복의 순교를 상징하는 탑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성전과 연결된 부활 경당이 있다. 이곳에 신석복 마르코의 유해가 모셔진 제대가 있다.

한때 축사로 사용되었던 신석복 생가터에 위치한 야외 제단은 성당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며, 야외미사 때에는 맞은편에 있는 기념성당의 지붕인 동시에 계단좌석인 구조물을 이용하여 전례의 분위기를 높일 수 있다.